본문 바로가기

활동소식/상담일기

이주노동자 고용업주, 건강보험 가입 의무화해야

2019년 이주노동 현장 이슈③
이주노동자 고용업주, 건강보험 가입 의무화해야

촛불정부라면 바꿔야 한다!
있으나마나한 과태료 조항, 이주노동자가 아파도 병원 못 가는 이유
영농증명서만으로 고용 가능한 농업이주노동자, 건강권 위협 심각

(사)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는 2004년 설립 당시부터 ‘이주노동자쉼터’를 운영하고 있다. 쉼터는 근무처 변경 등으로 실직 중이거나 장기 치료가 필요하지만 비용 문제로 장기 입원이 어려운 이들, 귀국 준비 중인 이주노동자 등이 숙식하는 공간이다. 쉼터 이용자들 체류 자격을 보면 설립 초기에는 미등록자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던 반면, 최근에는 체류 자격을 갖고 있는 농업 분야 이주노동자들이 증가하는 추세다.

쉼터 이용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장 변경이나 실직 등으로 직장 건강보험 자격을 상실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처럼 보험 자격을 상실한 기간은 일시적일 수도 있지만, 취업 분야나 체류 기한 등의 문제 때문에 국내 체류하는 동안 계속일 수도 있다.

이처럼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이주노동자들은 쉼터 생활 중에 아프면 민간요법에 의지하는 경우가 흔하다. 가령, 몸에 한기가 있거나 근육통이 있을 때 온 몸에 붉은 핏줄이 드러날 때까지 동전으로 피부를 긁는 모습은 캄보디아나 베트남,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두통에는 일명 ‘호랑이 연고’라고 하는 소염진통제를 인중에 바르고, 속 쓰림에는 녹차가루를 뿌린 찻물과 콩물, 미숫가루 등을 마시는 것도 이주노동자들이 선호하는 민간요법들이다. 그밖에 쉼터에서 이마에 파스 붙인 이주노동자를 보는 일은 드문 일도 아니다.

동전으로 피부를 긁는 일이 한국 사람들이 체했을 때 손가락 끝을 따는 사혈과 비슷한 이치라고 하지만, 적은 비용으로 의약품 처방을 받을 수 있다면 굳이 그런 조치를 하지 않을 것이다. 당뇨나 고혈압 등의 문제를 앓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주기적인 쉼터 무료진료를 통해 의약품 처방을 선호하는 것을 보면, 식습관 등의 문제로 위염 등의 소화기 관련 질병에 취약한 이주노동자들 또한 민간요법에 기대는 이유가 건강보험 미가입으로 인한 부담 때문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문제는 쉼터 이용 이주노동자들이 체류 자격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제14조 (건강보험)은 이주노동자도 「국민건강보험법」이 정한 직장가입자 대상임을 명시하고 있다. 다만 이 조항은 건강보험 사업장 ‘가입자격’에 관한 규정일 뿐, 강제 규정으로 보기 어렵다.

국민건강보험법 제7조(사업장의 신고)에 따르면 “사업장의 사용자는 이주노동자를 고용한 지 14일 이내에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보험자에게 신고해야 한다.” 만일 이를 어길 경우, 동법 제119조(과태료)에 따라 사용자는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 받게 된다. 비록 과태료 조항이 있긴 하나, 형벌로서의 벌금형은 아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영세한 농·어업 분야에서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사업주들 상당수가 건강보험 가입 신고를 하지 않고 있다. 특별히 농업 분야 같은 경우는 개인인 경우 사업자등록증 사본이 아닌 ‘영농규모 증명서 사본’만 있어도 고용허가서 발급 신청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과태료 처분 대상에서도 제외되고 있어 이를 강제할 수단이 전혀 없다.

결국 이주노동자들은 직장 의료보험 가입 대상이지만, 고용주가 가입하지 않을 경우 건강보험 가입은 오로지 개인 몫이 되고 만다. 지역가입자가 될 경우 전년도 지역가입자 세대당 평균보험료를 기준으로 납부하기 때문에 개인 부담이 클 수밖에 없어 이주노동자들 대부분은 지역의료보험 가입을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큰 질병이 발생하면 지역의료보험이라도 가입하고자 하지만, 외국인 등록일부터 소급하여 미납 보험료를 선납해야만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어려움이 있다.

사례1. 소킴(36): 버섯 농장에서 일하던 소킴은 성실근로자로 재입국한지 1년 8개월이 지났다. 설 연휴에 가슴 통증을 느껴 병원 응급실에 가야 했다. 혈액과 엑스레이, CT촬영 등을 통해 폐에 4센티 정도 염증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악성 종양 여부는 1주일 후에 나오는데 벌써부터 병원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건강보험 가입 이력이 없기 때문이다. 의료보험 혜택을 보려면 재입국 후부터 소급하여 지역건강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귀국할지 치료할지를 선택해야 한다.

사례2. 말리(28): 입국 3년째인 말리는 근로계약 연장을 하지 않는 대신 사업장 이동을 허락받았다. 시설재배 채소업체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지만, 사장은 더 젊은 이주노동자를 원했다고 했다. 체류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겠다는 업체를 찾기 쉽지 않았다. 구직 스트레스로 생각이 많았던 말리는 샤워 중에 뜨거운 물을 다리에 끼얹어 2도 화상을 입었다. 병원에서는 한 달이나 한 달 보름 정도 연고를 바르며 치료받아야 한다고 했다. 건강보험이 없는 말리는 병원 가는 대신 드레싱을 직접 갈기로 했다. 실직 중에 생긴 화상치료를 위해 병원 갈 엄두를 못 낸다. 지금 말리에게 화상보다 뜨거운 것은 체류기한이다.

위 사례들처럼 고용허가제는 직장 건강보험 가입을 의무조항처럼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강제조항이 아니다. 특별히 농업분야 상당수는 사업장 등록도 하지 않아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더라도 불이익도 없어서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건강보험 사각지대에 처해 있음을 알 수 있다.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들, 특별히 영농규모 증명으로 농업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용자들은 건강보험료를 부담할 충분한 여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입하지 않고 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할 때, 외국인 고용허가를 할 때, <국민건강보험법>이 요구하는 사업자등록증 제시를 의무화해야 하고, 직장건강보험 가입 이력이 없을 경우 이주노동자 고용을 제한하는 식으로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