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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소식/언론기고

2019년 이주노동 현장 이슈①

이 긴 글을 누가 읽을까 싶지만...(사)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 대표 잘생기고 착한 프린스는 한 자 한 자 눌러 적어본다ㅍㅎㅎ

2019년 이주노동 현장 이슈①

촛불정부라면 바꿔야 한다!
기한이 아닌 출국을 전제로 한 이주노동자 퇴직금 지급이라니……
최저임금법 위반과 차별에 앞장서는 고용노동부, 문제 있다

‘피가 묻어야 보이는 법전’이라는 노동권은 ‘개악 저지’와 ‘개정 투쟁’이라는 단어가 대변하듯, 자본은 언제나 노동권 퇴행을 시도했고,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기준이라며 노동권을 부르짖어왔다. 노동관계 권리를 이야기하는 법 중 근로기준법은 우리사회 인권의 최소 기준으로 버팀목 역할을 해 왔지만, 이마저도 개악을 시도하고 예외 조항을 두어 탈법을 시도하는 자본 앞에 노동자, 특히 이주노동자들은 무력했다.

현대판 노예제도라는 비판을 받던 산업기술연수생 제도가 폐지되고, 외국인 고용허가제가 도입될 때, 이주인권단체 활동가들은 노동허가제를 지향하며 비판적지지 입장을 밝혔었다. 당시 활동가들은 ‘이주노동자 정책이 점차 나아지겠지’ 하는 일말의 기대를 갖고, 고용허가제가 갖고 있는 사업장 이전 제한과 같은 독소조항 폐지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자신했다.

‘세월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하는 낙관과 달리 고용허가제 현실은 점차 자본의 입맛대로 개악에 개악을 거듭하며 퇴행만 있어 왔다. 사업장 이전 금지 철폐는 언감생심이고, 근로기준법이 정한 퇴직금마저 제대로 못 받고 있는 게 이주노동자 현실이 돼 버렸다.

고용허가제가 개정이 아닌 개악을 선택한 대표적 사례는 퇴직금 관련 조항이다. 2014년 7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제13조(출국만기보험·신탁) ③항에 따르면, “출국만기보험 등의 가입대상 사용자, 가입방법·내용·관리 및 지급 등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되, 지급 시기는 피보험자 등이 출국한 때부터 14일(체류자격의 변경, 사망 등에 따라 신청하거나 출국일 이후에 신청하는 경우에는 신청일부터 14일) 이내로 한다.”고 돼 있다.

출국만기보험금은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상당수의 업체가 영세하여 1년 이상 근무한 노동자에게 퇴직금 등을 지급할 때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이주노동자 전용보험이다. 이 보험에 따르면 고용주는 월 평균임금의 8.3%를 매월 보험료로 적립하고 보험사는 보험금 지급사유가 발생할 때 적립된 금액의 총액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고용허가제법이 만들어질 당시만 해도 출국만기보험은 퇴직급여보장법과 근로기준법에 따라 퇴직일로부터 14일 내에 퇴직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었다. 일부 편법을 쓰던 고용주들이 퇴직 일시금 청구 조건이 ‘1년 이상 근무’로 돼 있는 부분을 악용하여 근로계약 만기일 하루 이틀 전에 근로계약을 해지하여 퇴직금 지급을 하지 않던 사례가 발견되긴 했어도 국내 노동자들과 다를 바 없이 퇴직금 청구가 가능했었다.

퇴직 후 생계유지와 실업보험으로서의 기능을 함께 갖고 있는 퇴직금 지급을 14일 이내로 정한 것은 실업으로 취약 상황에 처한 노동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었다. 그런데 출국만기보험 개악으로 인해 이주노동자 고용주들에게는 ‘기한’을 전제로 하지 않고, ‘출국’을 전제로 퇴직금 지급하는 것을 허락하고 있다.

당시 개악을 주도한 새누리당 김성태, 김학원 의원 등은 “체류기간이 만료되어 출국해야 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출국만기보험금 등을 수령하고도 출국하지 않아 불법체류자가 급증하고 있으므로 이를 줄이기 위해 출국만기보험금 등의 지급 시기를 출국한 때부터 14일 이내로 명확히 규정하려는 것임”이라고 법안 발의 이유를 밝혔다.

근로기준법을 무시하면서까지 차별적 제도를 시행하는 이유가 이주노동자들이 잠재적 미등록자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 법안 발의자들 생각이다. 이 법이 발의됐을 때 설마 개악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는데, 박근혜 정부는 밀어붙였고 당시 야당과 시민단체는 무기력했다.

그 결과는 개악 저지를 위해 목소리를 높였던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외노협)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퇴직금을 수령하지만, 출국만기보험과 실제 받아야 할 퇴직금 사이에 발생하는 차액을 출국 후에 청구할 방법이 없는 이주노동자들은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국내에서 사업장을 옮길 경우에는 더 큰 어려움이 있었고, 사실상 제도에 의한 퇴직금 압류가 일어났다. 고용주가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은 경우에는 국내에서 받기도 어려운데, 출국해서는 고용주에게 납부를 강제할 방법이 없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외노협 이주노동팀이 작년 귀국 이주노동자 대상 퇴직금 수령 실태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퇴직금 액수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경우가 33%에 불과해 퇴직금 정상 수령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퇴직금을 제대로 받은 것으로 보이는 이들은 39%에 불과했다. 퇴직금만 놓고 보면, 정부가 운영하는 고용허가제는 공적 제도로서의 기능을 사실상 잃었음을 보여주었다.

새누리당에서 출국만기보험 개악을 시도할 때, 불법 체류자 방지라는 이유를 들이댔다. 이 말 속에는 이주노동자 단기순환 정책으로 정주를 막겠다는 인종차별적 시선과 자본의 이익에 부합하겠다는 의지가 묻어 있었다. 이주노동자 권익은 안중에도 없었다.

독일의 루돌프 폰 예링은 “권리 위에 잠자는 자, 보호받지 못한다”는 말을 했다. 이주노동자들은 체류 자격이 갖는 한계 때문에 당사자 투쟁이라는 면에서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근로계약 만기 후 1년 10개월 연장 혹은 성실근로자 재입국이라는 당근을 위해서라도 자기 권리를 주장하기가 어렵다. 근로기준법은 차치하더라도 근로계약서만이라도 제대로 지켜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 이주노동자들에게 퇴직금 차액을 강력하게 요구하라는 것은 현실적일 수 없다. 법 개정이 우선돼야 하는 이유다.

자본의 주구이기를 자처하는 보수 야당은 지난해부터 최저임금법 개악으로 이주노동자들을 차별하려는 시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촛불로 들어선 여당마저 자본의 눈치를 보며 단순노무직 수습기간 감액을 금지한 최저임금법 제5조 적용에 이주노동자를 배제하고 있는 고용노동부 행태에 눈감고 있다. 고용허가제 시행 이후 많은 시민단체들은 정부 위탁 사업과 교부금 수령으로 정부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기능을 상당 부분 상실했다. 이런 현실 속에서 고용허가제 폐지와 같은 강력한 투쟁이 얼마만한 동력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에 외노협을 비롯한 이주인권단체들은 최소한의 투쟁이라도 강력하고 집요하게 끌고나갈 필요가 있다.

출국만기보험과 단순노무직인 이주노동자에게 차별적으로 수습기간을 두고 있는 고용노동부 근로계약서 폐지 등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무엇이 있을까? 인권위나 권익위 진정과 같은 방법도 시도해 볼 수 있으나, 여론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객관적 근거, 자료를 확보하는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 그를 위해 귀국 이주노동자와 국내 노동현장 실태 조사는 중요한 전략이다. 고용허가제 입국 여러 국가를 대상으로 광범위한 실태 조사와 분석이 들어가야 하고, 이를 통해 정부 여당을 압박하고, 시민들에게 호소하는 전략을 구사해 나간다면, 최소한 출국만기보험이 ‘개악’되었던 부분은 원점으로 돌릴 수 있을 것이다. 수습기간 감액 금지 조항에서 이주노동자를 차별하는 문제는 비정규직 차별철폐 운동 단위 등과 연대해서 계속 요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한국이주노동운동을 견인해 왔던 외노협과 이주인권단체들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고용허가제를 ‘개악’하여 너덜너덜하게 만든 부분들이 어떤 면이 있는지를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를 통해 제도 ‘개선’을 이끌어내야 하고, 2019년을 고용허가제 폐지까지 이끌어낼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하는 해로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